'결혼' 히스아크 선교 사역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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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신랑을 향한 신부의 최상의 행동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선교 여행을 할 때 성인과 청년들 각각 일어나는 이슈들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청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에게 늘 반복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알기 쉽게 기정하겠습니다.
선교 여행에서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주로 사역하는 벽화가 중점이 아닌 것입니다.
재능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성품"입니다.
이것은 위장된 열정이 아니라 순결한 성품을 말합니다.
온누리, 아신대에서 전했던, 제가 늘 강조했던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일은 모욕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선교 사역을 멈추지 않은 이유라면,
사명이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 선악간의 일을 다 계수 하시기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사명을 받았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부에게 요구되는 태도
통상 청년들은 교회 사역을 매게로 친분을 쌓고 이성은,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역이 꽃을 핀다면, 결혼도 가능합니다.
참고로, 그리스도인의 만남은 '아니면 말고' 식이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세상에 있으나 섞이지 않고 구별되는 것입니다.
1 혼전순결
성도들은 지금 언약 외 성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몸을 섞습니다.
심각하게도 그 상태로 선교 또는 교회 사역을 하는 이 대참사가 요즘의 사역 트렌드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표적 같은 이 거룩한 관계를 더럽히는 청년 전도사들이 상당합니다. 성도가 아니라 사역자가 말입니다.
스스로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며, 부부가 한 몸을 이룬다는,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의 절정을 향해, 말씀을 섬기는 자가 반박하며
전복하는 것입니다. 참사는 끝이 아닙니다. 육체의 기간이 지나면 질려버려 헤어집니다.
2 비공개 연애
"죄는 죄를 낳는다."
비공개로 연애하는 일들은 이미 제가 온누리교회에서 수차례 본 바, 이 세대에서 이것은 죄도 아니고 일도 아닙니다.
손해 보기 싫은, 자신의 청렴함을 유지하고 싶은 이 잘못된 연애관, 결혼관으로 서로 교제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백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 은밀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상대를 상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미 교제하는 사람도 속이고,
공동체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이 외도는
끝을 모르고 속된 말로 양다리를 걸쳐가며, 눈치를 보며, 기회를 틈타서 수면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이와같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1과 2의 결론입니다.
제가 본 바 그들은 예배도 열정적이며, 사역도 열정적입니다. 퍼펙트했습니다. 하지만 사역은 우리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버림 받은 채로 40년간 자신의 왕국을 만들고
이어나갔습니다. 우리는 이 사례를 가룟 유다처럼 "나는 아니지요" 하고 쉽게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거짓으로 밥 말아 먹듯 부정하는 일들은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누룩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교제는 진실로 중요합니다. 이것이 깨지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도리어 사랑하면 그의 말씀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내어 주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돈도 나 자신을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3 언약은 선언적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으려면 그 만남은 공적이어야 하며, 정직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서로 만남을 갖는 것입니다. 이때 확신이 서지 않으면 기도로 준비 기간을 갖습니다.
서로의 중보자가 되어서 여러 유혹을 이겨 내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청년의 때는 연약하여 약속을 넘어
본능적으로 다른 자매를, 다른 형제에게 주파를 던지는 눈빛과 언어를 교환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게 들어와라", "나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
하지만 선언적인 행동은 앞서 말한 양심이 자신을 이끌어 가기에 내적 갈등을 거절하게 합니다.
나아가 공동체의 시선이 그들을 지켜줍니다.
이 일이 먼저 몸에 고정된 후에 교회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팀사역
팀으로 선교 여행을 가면, 특히 식사 시간, 혹은 선교센터를 떠나 현지 식당에서는 재앙이 일어납니다.
섬기로 온 것인지 섬김 받으려는 것인지 기본과 상식이 무너지는 일을 목독합니다.
자신들을 섬겨 주는 현지인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배 시간이 오면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경제적으로 앞선다고 정신까지 앞서는 것은 아닙니다. 있을 때 만큼만, 같은 눈높이로 같은 식탁에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식사가 먼저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이라도 같이 있어 주라는 것입니다.
4 함께 있는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는다
5 섬겨 주는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6 마무리, 청소를 잘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도하고'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먹고 나서는 테이블이 엉망인 상태로 나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난장판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사역하고 뒷정리가 엉망이면 선교팀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사회속에서도 이 기본 중의 기본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쉬운 삶은 아닌데, 그 싸움으로 언약 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들인데, 유치원 수준의 기초가 무너진 것입니다.
절제 없는 사랑과 절제 없는 자유를 추구하다가 기본 에티켓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여행을 간다면, 위에 기술한 기본 에티켓만 잘 지켜주면 자신이 쉼을 얻는데 제약은 없을 것입니다.
여행에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자연을 통해 힐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의 근본은 쉼에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는 섬기기 위해 출발하는 것입니다. (막10:45) 그 섬김의 대가로 우리에게 얻어지는 것은
위로부터 얻어지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죠. 천국을 가기전 그 잔치를 지상에서
경험하는 일입니다.
선교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인격적이고 너무나 인격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가지고 있는 자신의 고유의 성품이 그들에게 전달되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를 보니까 예수님을 알고 싶어"
그러므로 근본적인 예절과 신앙이 함양되지 않고 "열방! 열방!" 하며 무작위 '전도 여행'에 습관들이면 위험한 이유가
"아니면 말고", 이 무식하고 방만한 행동이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현장도 쑥대밭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선교 여행은 후면적으로는 교회를 위함입니다. 더 성숙한 성도로 거듭나는 축복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짧은 선교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사역자가 교회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준비 기간에서 다듬어지는 성품, 현장에서의 열매, 세상이 이런 선교를 "미쳤다" 아니 이제는
신학적으로도 거부하는 패역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성령의 길을 갈 때,
우리가 통장을 깨어 내어드릴 때, 역설적인 은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일은 물리적으로는 마이너스이지만, 반복했을 때 상대방에게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생명보다 귀하다
아니 생명이 돈보다 귀하다
나아가 하나님이 빚어가시는
하늘의 성품이 온전히 내게 스며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본 받은 바울
자신을 본 받으라는 바울
사역은 내가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성경을 보게 됩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부르신 타국에서 살아가지만 섞이지 않고
구별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
이것이 선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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