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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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자들은 문서로도 회개와 심판,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자신의 행위로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그는 보내신 곳에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 싫든 좋든 어떤 감정이든지 메시지를 되새김하게 되는 것입니다. 표적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자들은 인간과 관계를 맺는 자유의지가 제한되며, 무엇보다 이성을 초월하는 순종이 요구되었습니다. 언제까지? 대언자가 순종할 때까지 말입니다. 예상과 다르게 사역의 어려움이 시작됩니다. 그들은 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백성에게 대언했기에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23:37 선언의 결과를 통해서,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을 나누게 되지만(분깃/잔을 나누다) 자괴감, 슬픔과 외로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극도의 상실감으로 견딜 수 없었던 것이죠. 인간은 죄인이라 믿지도 않고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피곤해도 교회에서 자는 게 좋습니다. 설교자는 상처받겠지만 어떻게든 빠지지 않고 꾸겨서라도 들어야 합니다.) 내일 11월 3일 히스아크 캄보디아 첫 모임 “순종”과 “순결”에 대해서 나누어 볼까 합니다. 나 선교로 부르실 때 거주지 상태는, 보증금 0, 월세 미납 이제 끝, 그 끝자락에서 웹툰 실패로 인한 빚독촉, 고작 1-2주 선교 여행 때문에 거리 생활을 해야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 3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훗날은 더 어렵게 사건들이 붙어서 일상이 되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네팔, 인도네시아, 니카라과 러시아 등 주의 영에 이끌리어, 영으로 본 세계를 육으로 보게 됩니다. 참고로 나는 내 발을 씻길 때까지 성경 통독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게으른 것이 아니라 탈진상태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주가 보여주시고, 제가 가서 확인하고 말씀하신 것을 다시 제가 성경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성경 통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종의 대화가 된 것입니다. 오해가 있습니다. 순종이란 “내가 너 차 사주고, 집 사줄게 너 고난 없이할게 가자”가 아니라 그리하지 않으실지라도 열매가 없을 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창조, 신방의 목적, 부부가 한 몸을 이루는 지극히 아름다운 장소, 여기에 무언가 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신랑이 신부만으로 기뻐하는 것 신부가 신랑만으로 기뻐하는 것
시편 16:3이 말했던 완전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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