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듣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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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듣는 데서"
선교사도 창조를 역사적 사실로 받지 않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무슨 근거로 예수님을 믿는 것일까?"
이로써 자기 '의'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좁은 길'
거짓이라도
절대 다수가 되면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권력은 언제나 미디어를 선점합니다.
믿음 가운데 고민하는 분들의 일관된 질문
"예수님 오시면 어떻게 만인이 볼 수 있어요?"
애석하게도 창조와 진화,
말씀으로 창조된 만물의 진리와
수로 이루어진 과학적 세계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진화,
나사의 세계관을 추종하는 기독교는 사실상 예수님은 창조자이시기 보다
미생물에서 원숭이의 흐름으로 난 인간 예수일 뿐입니다.
'니체의 부활'
진리는 무너지고, 과학적 진단으로 부활의 주는 단지 고대인,
완전하지 않고 오류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도 결국 스마트한 현대인에게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데,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모세오경, 선지서, 시가서
이를 히브리인은 타나크라 부르고
우리는 구약이라고 말하는 성경을 가리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음을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둘 중 하나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완전하지 않고 오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
이 십자가 대속이 무익해 집니다.
못박히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것도
불쌍하고 무익해집니다.
자연스럽게 "부활"은 진리가 아닌
각자의 종교적 영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떡주는 것보다 못한
그러니까 타인에게 전할 만한 게 아닌 것이 됩니다. -마4:4
베드로,
지중해를 격변케 한 바울
그들의 순교. 나아가 고문에도 신앙을 지킨
주기철 목사님까지 대단히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성령 모독 죄가 뭔지를 모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다시 말하나
신사참배는 지식인이
순교는 믿음의 사람들이
'창조'
사람과 동물은 다르며
만물 역시 종류대로 라는
고유성도 무익해진다
성경은 어김 없이 고대인의 기록으로
불교와 다를 바 없는 철학이 된다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결국 죄된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
우리에게 왜곡된 사랑만이 남는다
사랑만이 전부다
구제가 전부다
불륜도 어쩔 수 없다
동성애(xq28)도
수간도 그 어떤 사랑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사랑으로
용인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차별금지법처럼 말이다
돈과 능력이 전부가 된다
우성인자를 가려낼
철인이 다스리는
헬라 세계의 도래
짐승 닮은 인간의 출현
말씀을 담당하려는 신학도는 웃사가 되어
자신도, 많은 이들을 옥의 문으로 이끌게 된다
-마23:13
신학은 이성으로
과학은 믿음으로 가 아니라
인간 기술문서는
반드시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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