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아크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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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5-05 12:33 조회 250 댓글 0본문
이 벽화는 러시아에서
16년 네팔에서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고, 17년 러시아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에서는 제가 답했습니다. "교회"
19년 경상북도 영주에서는 네팔 선교사로 떠나려는 나를 직잡 붙잡으시며 부르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의 인생, 모든 길이 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나는 목회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에서 이름을 내고 살고 싶었습니다.
헌금을 하면 되지 내가 사역을 한다? 목회? 그건 아니라고 봤어요 아니 싫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히스아크, 온누리교회 안에서 네팔 고레다라 마을에 그 시작을 조용히 알렸다. 고레다라 마을은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곳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16년 7월 네팔 고레다라에서 구원의 방주는 움직이고
23년 7월 오키나와 - 표어: 선교 - 사도행전 1:8
25년 2월 캄보디아 - 표어: 기도 - 출애굽기 33:17 25년 8월 우에다 - 표어: 섬김 - 야고보서 2:22
26년 2월 야치요 - 표어: 성장 - 고린도전서 13:11
26년 7월 야치요 - 표어: 확신 - 빌립보서 1:6
네팔에서 사도행전 1:8
남미에서는 사무엘하 7:6, 역대상 17:5
남미에서는 낭만적이게도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
하나님께서 직접 세미한 음성으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남미에서 받은 말씀은 최근에서야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왜 아둘람인지도 다시금 묵상하고 있어요 세상은 행복을 추구하나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은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하고 절망적으로 느낀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조차
고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지고 있다. 사람에게 고난은 필연적인 것이다. 고난이 없으면
죄인된 본성을 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자기 위로하는 교회를 보며 한숨이 나온다 단면적으로 박제를 해 버렸다.
예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으나 동시에 책망하셨다는 사실을
나는 대형교회 다니면서 들어 본적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성도들은 다 떠나고 클레임을 걸기 때문이다.
죄가 무엇인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돌아 보면 하나님의 역사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걸 느낀다 늘 잠잠히 그 누구도 숟가락 얹지 못하게
절대적으로 인간 공로를 주장하지 못하게 역사하신다 '출애굽기 33:17' 나를 부르실 때 “덮다”라는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시편 27편부터 시작된 내게 주신 말씀은 그대로 다 되었다 이렇게도 부요한 내가 답답해서 많이 무너졌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계시는 걸 알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선교로 부르신 나라인데 기도를 해도 기도를 해도 도리어 급속도로 망가지는 일들만 보게 된다 증언은 가십거리로 여기고 거짓 증언은 여기저기서 많이 터진다 그걸 기이하게도 믿는다 내가 어처구니없어 할 때 내 주변 녀석들이 이 허망한 것에 동참하고 있기에 허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 미모의 사모가 유명세를 탄다
이 세대들은 사모조차 틱토커처럼 살기를 원한다. 교회가 미쳐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악인의 증언은. 더욱더 기세를 펴고 정작 본 자는 세상 적으로 망하고 또 망하고 있다 오랫동안 생각을 해 보니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악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악마의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긍휼하게 또 긍휼하게 메시야처럼 나타난다
작은 적그리스도들조차 교회 안에서 그렇게 너희를 미혹하고 있다는 사실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때를 놓쳐
결혼이면 결혼 문제 교회 사역이면 사역 문제 배우자가 없으면 그 문제로 돈이 없으면 돈 문제로 자기 문제로만 씨름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내게 오실 때 “예배자가 없다” 하심을 이제는 살면서 계속 보게 된다 믄제는 나 또한 예배자가 아니다 웃을 일이 없다. 거짓된 목회자들을 볼 때마다
역겨움이 밀려온다. 개척교회라 말하는 목회자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크면 나쁘고 작으면 선하다
라는 공식은 순진한 발상이다. 얼마나 계산이 밝은지 이제 막장이다. 이런 이유가 다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이란 침공, TV나 미디어로 보는 것처럼 체감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잔인한 소식을 밥을 먹으면서 보기도 한다 그 환난의 조짐이 보인다 일본 사역에 대해서 일본 야치요를 보여 주셨을 때 마음에 확신이 일어섰다 특히 차세대들은 귀를 열고 듣는다 그러나 차세대가 대학생이 되면 되면 때는 늦는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 시편 8:2 차세대는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가 있겠지만 성인들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 밭에 있다 성인은 옳고 그름으로 인간 정수기가 되지만 이 이이들은 그대로 받는다. 이게 차세대의 힘이다. 그래서 나는 부를 때 없는 돈까지 털어서 간다.
또 야치요의 수장 요시하라 마나부 목사님을 만나러 간다. 이 분이 가장 중요하다. 마무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우리가 선교에서 가네 마네 부모가 반대하네 등 교만함을 보일 때 다 날려 버려고 했다. 이들은 신학들이다. 네팔에서 벽화를 한 청년들 사이로 보이는 친구가 중학생이다 1516교회 이상준 목사님 아들이다 이 친구 혼자 왔다 청년 사이에 껴서 온 것이다 꿈이 선교사다 나는 이후로도 이 중학생 친구 같은 이를 본 적이 없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20대도 30대도 이 친구 하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당시처럼 지금도 말이다 무엇 때문인가?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
야치요 일본선교 보고
http://www.hisark.team/bbs/board.php?bo_table=qa&wr_id=98&device=pc
고하용조 목사님의 짧은 메시지
https://youtube.com/shorts/cyMAhyq3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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