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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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5-29 19:17 조회 66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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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영성이 있을 시절에는 기도의 편지을 받으면, 기도를 쓴 그가 누구인지
기도로 헌금을 보낼지 말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의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기도편지를 작성한 그가 누구인지,
혹은 기도편지를 소개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기도편지를 쓴 사람이 지닌 트렌드가 있는 싱싱한 컨텐츠가 필요했다.
하지만 돈을 쥔 사람이 그 드라마를 보고 마음을 흡족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시겠지"가 된다.
혹은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가 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다.
본래 이 세상에서의 원칙은 이러하다 돈은 돈을 본다.
돈이 있는 곳에 돈이 모인다.
교회 헌금이란게 모름직, 자신에게 권세와 명성을 주어야 지갑이 열리는 것.
그 나라의 의를 구하라는 말은 무엇인가?
기도 제목을 요청하면 무엇을 두고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 환장하겠다.
어차피 좁은 길이기로 체념한다.
이름에 대해서
아시아는 관계 사회다. 이중 한국은 학력이 중요하다.
기성세대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왜 자녀를 그 비싼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가?
다 이유가 있다.
학벌이 없으면 얼굴이라도 반반해야 한다.
얼굴이 좋으면 취업의 결도 달라진다.
한국 사회는 얼굴이 탁월하면 고졸이라도 상관없다. 특히 여자는 그렇다.
여자가 남자보다 작정하고 돈 벌면 쉽게 번다.
애플사의 CEO 스티브잡스
한때 스티브잡스의 PT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IT 투자유치의 성공적인 스토리가 화재가 된 적이 수다했다.
그런데, 살펴보면 학연으로 관계되어 있다.
학벌이 받쳐주지 않으면 팀의 규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둘은 돈을 이끈다.
창세기 11장, 바벨탑의 이름을 오늘날로 번역하면 명성이다.
그 이름을 가지면 흥행이 보장된다. 돈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코카콜라와 815 콜라를 두고 비유하자면, 가격이 같은 음료라도 애국이고 뭐고 코카콜라를 먹는다.
그 이름을 홍보하는 게 회사다.
교회는 누구를 전하는가?
기업의 성공 스토리는 마케팅 부서의 몫, 투자는 한끗 차
투자는, 성공하면 혁신이고 실패하면 사기꾼이다.
성공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혁신가라 불리운다.
혁신 뒤에는 누군가의 삶을 쥐어 짰다는 말이다.
이게 얼마나 고약한 일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빠른 성공 뒤에는 피의 대가가 따른다.
구로의 등불이라고 할까?
여튼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간혹 신학생들 중에는 순전하게 학교 이름을 따지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학부는 상관 없다.
그러나 어떤 정에 이끌려서 신대원을 결정하는 친구들이 상당하단 말이다.
둘 중 하나이다. 지혜가 부족하거나
정말 그 학교를 사랑하거나
심심치 않게 나누어 보면 교회는 사회와 다를 줄 믿고 있는 것이다.
20대는 사회 경험이 없는 터라 잘 모른다.
교회의 세계는 사회의 굴둑 기업보다 더 견고한 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까 굴둑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로 온다는 의미이다.
청빙, 교단신학 안에서
국내 이름 있는,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그것도 서울권 청빙에서 국내산 학벌이 될 것이라 여기면 곤란하다.
왜들 유학을 가는지?
"학벌 중요하지 않다" 이것보다 꿀발린 거짓말도 있을까 싶다.
그럼 이력서는 필요 없지
그런 곳에서 고졸 천재와 하버드 졸 누굴 채용할까?
천재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면접자가 천재적인 스킬을 보유해야 한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실력을 알아 보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버드 졸이 채용된다.
신학 그 카르텔
"구원을 그따위로 어렵게 가르치는 석학", 라너씨인가?
이 진리의 학문에서 고차원의 유학이 필요한가?
예컨데 스리랑카인이 그 나라에서 성경대로 귀신을 쫓고 병든자를 치유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국내로 오면 이단이 된다.
이성주의자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이성으로 쌓은 그들의 견고한 성루가 위협을 받게 된다.
물론 한국의 유튜버 배추머리가 퇴마사로 명성을 얻을 때가 있었다. 한숨이 나오나 ..
아직 한국교회는 수준이 낮다. 이 일로 아줌마 집사님이 나를 괴롭게 했었다.
그녀를 진실로 버렸다. 대체로 집사님들이 부유하면 유튜버 애독자들이다.
다시 돌아와서 서구권 학교는 국내와 도서관 사이즈가 틀리다.
이 부분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어떤 교수에게 배운다는 의미는 그의 머릿속
도서관에, 그 사서에게 배운다는 의미와 통한다.
신학박사
박사가 되려는 자는 논문을 점검 받아야 한다. 논문은 익히 알고 있듯이
새로운, 신선한 것을 다루지 않은 소재가 유리하나,
결정적으로 학위자의 글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글을 인용해야 하며, 인용글의 원저자는 학위세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인용의 설득력을 가진다.
이 세계에서 설득의 힘은 믿음이 아니라 명성이다.
페이퍼가 페이퍼를 검증하는 구조이다.
신소재가 혁신이 된 사례가 바로 역사비평이다.
역사비평은 성경을 파괴한 혁신적인 소재였다.
십자가 누가 모르냐?
그런다고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나?
사람들이 십자가 말고 이것 말고 더 필요하더냐? 그러면 선교사 되는 거다.
그런데 요즘은 꼭 나가야 선교가 아니라 사탄에 속아 넘아간다.
"하나님의 선교는 큰 것이야"
친구들아 국내파를 무시하는 교수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까?
이것은 모순이란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정체된 시장에서
유학파가 대형교회 청빙 조건이 된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사역하다가 국내로 넘어오는 일은 신분상승,
삶의 질도 달라진다. 그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목숨 걸겠습니다"라고 절절하게 고백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선교사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벨하우젠의 문서설이 남아 있기 때문에 크게 도박을 걸 수는 없다.
자녀도 역시 선교사가 될 수 없다. 되려면 유학가서 캠퍼스 사역으로 위장하라
그렇다. 이 세계에서 이미 믿음은 달나라로 쏴 버린지 오래이다.
국내산 추천서 직방 취업
간혹 대형교회 담임목사님에게 청빙 부탁이 오곤한다. 그의 추천서면 직방이긴 하다.
신대원
학부는 상관 없다. 그런데 신대원까지 아무대나 갈려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그를
토닥이는 어른이 있다면 그 어른은 학교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학생 한 명당 1년에 최소
350 -700만 원은 보장된다. 정신차려라. 그는 더 좋은 곳에 콜링이 오면 떠난다.
독립교단에서 안수를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선교사들이다. 선교사가 될 것이면 독립교단도 좋다.
혹은 교단 헌법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정치를 하려는 유학파 권력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독립교단에서 시작하는 것은 "나는 고생을 하겠습니다"라는 선언서이다.
상관 없다고 말하면 그렇게 해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경험을 해야 안다.
대체로 맛보지 않은 사람은 맛을 보려고 한다. 그렇게 인생은 흘러간다.
경험하려면 해라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하려면 해라.
선한 코스프레하는 친구들도 사회 맛을 봐야 한다.
고생 안하는 친구들은 부모가 렉서스든지
아니면 2중직으로 제네시스를 타고 다니는 녀석들이더만.
아니면 가정교회라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그림
또래들과 같이 학부를 졸업하고 교단 신학을 간다.
24세 대학 졸, 25세 신대원 입학. 훗 날 그 나이 때 친구들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나이가 들쑥 날쑥하면 많은 사람 아주 적은 사람이 패싱된다. 이미 좌파 문화로 나이, 그 개념이 무너져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불편하다. 그리고 그들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좀 있다.
어찌되었건 나이차가 크면 별반 도움도 받지 못한다. 이는 큰 교단신학이라도 그렇다.
대형교회 출신,좋은 대학에서 교단신학 이것은 꿀
선교사도 대형교회 출신이면 4륜구동 자동차가 생긴다.
임래청 선교사님 아직도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 저기 기도편지를 보낼 창구가 있더냐? 학교는 네트워크의 장이다.
학교가 이런 네트워크가 무너지면 창구가 없다.
지금 그분의 후원처라면, 대학원 때 한끼 아껴서 모은 돈으로 외국인을 도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본인도 가난하면서 말이다.
대단하게도 외국인, 이제는 그가 잘 되어서 임래청 선교사님을 돕는다. 권오윤 교수님의 증언이다.
그리고 고난이 축복이라는 그 분의 딸, 미국의 작은 교회.
그곳에서 누군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아무도 믿지 마세요" 이 말은 진리였다.
독립교단에서 의가 있을 것이라 믿는가? 독립교단은 모래알이다.
대형교회
요즘처럼 갈 길 모르는 시대에 마음을 채우는 서비스를 잘 한다면 대형교회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이사야가 나오면 목 잘릴 수 있고 그 선택은 자유다.
지금은 마지막 때
심판대 앞에 선다.
코로나로 문닫았던 대형교회 그들로 인하여 모든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계속 말해 왔었다.
용서 받기 어렵다.
용서 받기 어렵다.
그런데 신학의 스펙트럼이라고?
이것은 나를 죽여 주세요라는 의미인데?
지혜
기존의 흐름을 역행하지 말라 외국에서 바라보았을 때 20년 된 학교와 120년 된 학교는
격이 다르다. 그러나 교회로 오려는 일반인은 니가 무슨 대학을 어디서 나왔든지 상관 없고
니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만 본다.
농담아니라 내가 이단에 대해서 긍휼이 없는 까닭을 나중에 말하겠다.
마음이 양아치면 양아치에게 쏠린다.
돈을 탐하면 돈만 보이는 것처럼
영생 외 얻을 것이 다르면 배추머리같은 혹은 과천 할아버지에게 속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면 성도는 남아 있는다.
진짜면 그 믿음 없던 성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을 받는다.
가짜의 무리에 가짜가 많다.
다시 말한다. 좁은 문이다.
마음을 위로하는 비즈니스가 더 크다는 뜻이다.
만약 어떤 교회에서 자신의 백그라운드가 없어도
써 준다면 열심을 다해라. 그 교회는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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