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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교단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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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8회 작성일 26-09-1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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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에 대해서

우선순위:

1. 조카 주희 안정

2. 신호

3. 자퇴 결정;


이미 총신대학원 1년 하반기 무렵 그리고 시기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 초반 

복학한 자매, 제게 반갑게 인사를 하다, 제 카카오톡 친구가 되고나서 제 프로필의 메시지들을 보고 다음날부터

그들과 동일하게 안면 몰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 때가 되었구나"

그 상태에서 더 머물게 되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보호하시지만)


제가 통합에서 자랐습니다. 합동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 점은

1. 프라이드가 강하다

2. 본인들이 성경 무오함을 지키는 줄로 착각한다.

3. 힘이 없는 사람들을 쉽게 깔본다(이것은 합동/총신의 고질적 병)

장신은 총신처럼 프라이드가 찌르지 않습니다. 장신도 성경 무오함을 지킨다는 주장을 합니다. 

마치 총신 혼자 이 싸움을 해 나가는 것처럼 말을 하는데 정작 그들은 그 무오함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 해석방법은 장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총신보다 장신이 인지도가 있습니다. 컴플렉스입니다. 


금일 백석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목사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 목사님도 합동에서 사역을 하시는데요 총신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학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교만해 집니다. 이건 일종의 패턴입니다. 


개척교회에 대해서 

점점 시스템화가 되어가고 기도가 형식적일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믿을만한 점을 봅니다.

큰 돈이 오고가는 투자유치에도 동일한 관점이 작용됩니다.

바로 사람의 학력과 경험입니다. 한국은 좁고 관계 중심이라 미국처럼 실력만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저 역시 투자유치를 여러번 경험할 때 사실상 실력보다는 인맥과 출신이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지방대와 서울대, 카이스트는 완전히 다릅니다. 


학벌은 중요하나 교회에서는 이제 세상을 따라가는 잣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순수한 열정이 사라지고 기도의 불을 믿는 대신에 학문과 학벌 그리고 그 사람의 배경을 본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유명 신학자들이 왜 불신자들입니까?


저는 안산동산교회의 초대 목사님의 열정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전도왕이셨습니다.

후에 타락한 조용기 목사님도 열정이 있으셨습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의 순수한 열정도 그렇습니다. 

당시 목사님들은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 있었지 지금처럼 계산적이지 않았습니다. 


목회자의 자질은 사실은 사람을 보는 안목에 있습니다. 그 안목은 아픔에서 자라납니다. 

"배신의 연속"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목회를 잘합니다. 

사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목회를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목회자들이 후보생시절부터

행복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회 성장학의 주장처럼 사람의 열심으로 부흥이 됩니다.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자명한 사실입니다. 저도 비즈니스를 해 본 사람이라. 

사람이 얼마나 속이기 쉬운 존재인지 알고 있습니다. 설득에 관한 유명 저서들이 지적하는 것을 요약하자면

사람은 본래 수치심과 열등감이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 기술로 역활용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그러니까 진리가 있어도 그 진리를 보고도 장애물이 생긴다면 믿지 않는고 진리를 지우는 편을 선택합니다. 

왜 진화론을 가르치겠습니까? 왜 공식적으로 거부를 못합니까? 시스템화 된 세계에서 고립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진리를 진리대로 믿는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보고도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권위자를 의존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주제 넘는 조언, 개척교회의 경험 인본주의 관점

"회사가 된 교회"

그리 좋아하시는 회사를 예로 들자면,

구글의 풋내기 대학생들은 대형 포털 야후를 설득했지만 거절 당했고 또 거절당하다 창업을 했습니다. 애플도 동일합니다. 

미국의 흔한 차고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사례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물론 지금의 거대 기업의 스토리는 가공되었다는 점 그들도

백그라운드가 있음) 네이버 창업 초기 지식인으로 대박을 쳤습니다. 

젊고 자유로운 그 회사는 폭팔적인 성장을 하면서 대기업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조직화되고 시스템이 갖추어 지면서

관료적인 형태가 고착화 됩니다 이것은 회사의 보편적인 과정입니다. 

그래서 의장들은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여 고착화된 시스템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그들처럼 등장한 작은 회사에게 언제든지 추월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 목사님들은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시야가 있습니다.

그들의 조언은 사실 깔보는 마음에서 나오는 교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이 부족해 보입니다.

가르치는 리더조차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제가 전임이 되기 전, 사역자들에게 사회의 경험을 쌓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청년 사역자들은 성도님들의 헌금을 가볍게 봅니다. 이를 얼마나 지적했습니까? 자기 돈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아깝거든요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설교할 때만 봅니다. 조금 신실한 친구는 큐티 할 때나 봅니다. 이게 뭡니까? 약팔이들이 아닙니까?

성경보다 신학책을 더 신뢰하고 읽는다는 것은 성령보다 사람을 택한다는 의미입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젊은 사역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서 일을 해보면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당장 인맥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면, 사내 정치를 마주하게 됩니다. 

일을 잘해도 뜻하지 않게 미움과 시기 여러 형태의 사람들의 본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알게 됩니다. 사역자도 이 과정이 없이 바로 목회자가 된다면

한량이 됩니다. 만약 사무엘 같다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아니잖아요? 돈이 잖아? 편함이잖아? 받아 먹을 거 다 받아 먹잖아?


청년들을 양육하면서

신학교 안에 불량한 목회자 자녀들(PK) 정말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성경 1독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학교를 오는 것입니다.

와서 더 방황을 하는데 이는 정말 교만한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으며 간절함이라는 것은 찾을 수 없는 교만의 극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는데 읽지 않으니까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준을 버리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도 그를 버리십니다. 


믿지도 않는데 교회의 기물도 마음대로 쓰고, 교회차도 그냥 쓰고 말입니다. 만약 그들이 예배 의전을 제대로 배웠다면

그들은 불신이 가득한 상태에서 기물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편리를 위해 취할 것은 취하는 발상. 왜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을까?

.

.

교회 설교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봤습니다. 너무 좋더라고요. 왜 이런 설교가 국내에서는 점점 사라질까? 

1. 혼합주의 - 나사의 과학적 세계관은 '궤도'를 이탈시켰다. 

2. 성도들을 의식함 - 이미 성도들은 자기 귀에 들리는 설교를 찾아간다.

내 선배는 만나교회로 갔다. 감리교 만나교회.... 본인 영성도 좋지 않은데 만나교회라니?

지금 유명한 스피커들은 CBS, CTS에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공짜이겠습니까? 물론 저는 CTS는 응원합니다. 


최근 설교의 흐름, 적용 중심 곧 나 중심

성경은 문학적 기법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이미 신학에 정착 되었습니다. 교회 설교에 반영됩니다.

이것도 자유주의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그래서 성경에 장르라는 것이 중요해 졌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입히면 딱 맞게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신학교의 설교학을 싫어 하는 이유가 이미 작가 생활할 때 배운 것들을

여기서 다시 배우니 정말 낯설고 끔찍했습니다. 시나리오 집필이 뭔지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사회생활하면서 프리젠테이션(사고파는)의 스킬들을 지금 적용하고 있는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가 생략되는 것입니다. 


단언컨데 저는 청년의 시절에 2~3천 명 앞에서 간증을 할 때 성령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설교는 성령께서 조명을 해 주셔야합니다. 

나는 당시 간증 문 중에서 부끄럽지만 "성령이 오셨네" 단어가 유치해서 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감동이 왔고 눈물을 애써 참았었습니다. 

오늘날은 기도는 사라지고 스킬이 늘어가는 모습들을 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도의 귀를 즐겁게 한다? 


물론 제가 경험을 만화란 장르를 택하여 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르에 예속되는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만화란 장르를 택한다고 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왜곡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틀을 적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과 틀에 맞추어서 문학화하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창세기는 고대근동 문학입니다. 사실로의 아브라함이 아니라 내러티브로서 설화가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해석기법에 쓰이는 방식들 굳이 맞지도 않는데 샌드위치 기법을 가져다 쓰는 모습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최근 설교학의 책들이나 본은 뉴욕커 팀 켈러를 모방하는 데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 유신진화론자를 말입니다. 

그가 죄를 말하며 그가 성경 무오함을 말합니다. 신성모독자인데 총신에서 무척 좋아합니다. 

예전에 존 스토트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

교단도 옮길 예정입니다. 명성이 있어 시작하기에 좋지만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언제나 일을 보여주시고 그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어렵게 느껴집니다. 


■ 한 사람을 보여 주시다

한 사람의 회의 모습을 보여주실 때 그가 누구인지 일어나 계속 찾았었고 이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대원에서 사역하는 어르신이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일본 야치요 온누리교회에서 사역을 마친 후 꿈에서 한 총신대학교 교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깨어나 안위한 것도 있습니다. 이분이 성품이 온유하세요. 구약학 교수입니다. 총신은 지금보다 더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자세히 말은 할 수 없지만 "나는 여기까지인가?" 나름의 추측을 하며 판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 사람이 의지하는 것 "학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창세기 15:1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입시에 왜 민감해 집니까? 본능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저도 오랜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벌이 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학벌이 가장 정직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대기업은 안정을 보장하죠? 그럼 인 서울은 나와야 합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미 기업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1. 사역지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단이 장로교입니다.

그 교단 신학은 장신과 총신으로 갈립니다. 양대 산맥입니다.  우리 친구들에게 현실을 말해 줍니다.

통합으로 취직을 하려면 장신대가 1순위가 됩니다. 

합동이면 총신이 1순위가 됩니다. 총신에서 벗어나는 순간 취업 기회가 줄어듭니다. 


내가 왜 우리 공동체 형제들을 계속 떠 보았겠습니까?

본질적으로 가죽에 죽고 사는 존재들이라 학벌에 대한 욕구가 강합니다. 

서울신대와 저울질한 총신 그러나 내가 총신으로 안내했던 것은 그 마음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지금 친구들이 이전보다 교만하지 않기에 총신도 허락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시작부터 개척교회로 부르심을 입었기에 학교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2. 담임 목사청빙

당회가 목회자의 무엇을 볼 것 같습니까? 

수도권에서 청빙의 조건은 유학입니다.

장로교라면 장신대, 총신대를 나와야 합니다.

대형교회 사역 경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5년 사역하면 옮겨들 다니는 겁니다. 


이 두 학교에 나오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나 나쁘게 이용을 하니까 책망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사역자가 어느 학교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품입니다.

그 성품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제가 강조했던 것이죠? 저 역시 그것을 계속 바랐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신학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똑똑하고 얼마나 천재적인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희귀합니다. 왜 혼을 냈는지 이제 알 것이라 믿어요. 


신학은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

선을 쌓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무너 뜨리는 데는 일순간 

신학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보다 어느덧 자기 정치가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간단합니다.


"불신"

"과학에 맞추어 신학의 궤도를 수정하다"


그들은 온전히 창세기를 다루지 못합니다. 다루어도 상당히 과학에 비유를 맞추어 가르치거나 설교를 합니다.

고학력일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해집니다. 문제는 듣는 사람들도 온전히 받지를 못합니다. 공교육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망해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모세 오경으 인간 저술로 다룹니다. 장신이나 총신이나 다를 게 있는가?

없습니다. 장신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교수가 있는 것처럼 총신도 그렇습니다.

총신만 성경 무오함을 지키려는 게 아닙니다. 총신에 있을 때 너무 역겨웠습니다. 본인들만이 성경을 지킨다고 자부합니다. 

앞에서는 무오함 뒤에서는 유신진화론 사상 

한신보다 감리보다 장신보다 더욱더 더럽고 비겁한 태도


■ 신학의 명성, 마치 은밀한(유학) 지식을 소유한 엘리트 마인드

바벨탑처럼 쌓아온 탑, 학문의 지식이 깊을 수록 구원을 복잡하게 만드는 신학자들 

로마 가톨릭처럼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장자권을 취한 것처럼 그들도 그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3 


개혁주의 신학은 언약신학이 핵심인데 이단처럼 끝이 다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그 이름을 교회가 취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도 얺게 말을 합니다. 이러니 이단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누가 가장 많을까? 이건 명백한 도전이니다.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정복도 하나님의 전쟁인데 이를 뭐라고요? 마치 힘이 없는 팔레스타인을 강탈한 사건으로 말하는 게 

말이 됩니까? 본인이 하나님입니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6:23


■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이방인으로 여기거나 유대인을 저주하거나 교회로 대체 되었다는 사상은 

언약을 파괴한 도전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거부감은 "백 투 더 예루살렘"을 외친 인터콥같은 불건전한 단체의 영향도 있습니다.

저는 인터콥에 몸담았던 어른들에 대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그냥 선교를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인터콥 젊은 이들과 청년들은 매우 싫어 합니다. 그들을 양육을 해 보았지만 관계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인터콥 전도의 특성 때문인지 

사람과 잘 친해지는 만큼 사람을 잘 버립니다. 이미 그들의 교리는 유명하여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 대체신학

나는 사랑을 받고 너는 저주를 받아라 나는 선하고 너는 사악하다 

상식적으로 봐도 얼마나 악한가? 그런데 이것을 성경을 빌어서 저주하다니? 발람도 저주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을 당신들이 저주하다니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너무 사악합니다. 수업 중에 조리돌림하는 것은 과거에도 여기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본인들은 복음으로 어떤 고난을 당했나요? 선교지에서 혹은 말씀으로 저격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말씀지키다가 

다 잃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단지 양아치들이 아닙니까?


너무 사악한 게 장로교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나서 로마교회와 일치를 벌입니다. 

그리고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입니다. 별 사악한 짓들을 다 해 놓고 이제는 신은 성경의 하나님일 수 없다.

혹은 진화되었다라는 악한 사상을 교회에 퍼트리고 있습니다. 


본인들의 행실을 성경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데, 성경을 교회가 파괴하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유신진화이론으로 총신 자퇴를 확정했지만 언약신학을 다시금 확인하고 더는 미루지 않았습니다.

편입을 결정한 것입니다 교단을 바꾸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신학교가 건전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리를 따진 것 뿐입다.



음성, "그냥 두라" 


이제는 개척교회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어차피 연합은 되지 않습니다. 이미 정치화 되었거든요. 


WCC에서 일어난 "상황화" 복음의 토착화 , 진화론 베이스의 이론

성경 무오함을 믿지 않기에 전도의 미련함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나 보다 전도할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토착화 전략의 뿌리가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이것은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신학에서 동일하게 가르치는 선교학 이론입니다. 


어린이 대상: 보혈을 수박으로 

온누리교회 새신자 예배: 복음이 진짜라면 - 오뚜기 진라면;


성별이 없는 교회의 전도전략은 "좋은 게 좋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에는 보수주의 자유주의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냥 두라" 


"이제 와서요?"


씁쓸함 돌아섰지만 지금 나이 40 후반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빚만 생기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껴봅니다. 

이 마음은 다행히 오래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이건 제 나름의 일탈입니다. 이를 핑계삼아 

조카 주희가 선물해 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갑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나서 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본 그 증언은 


"그렇군" 혹은 "저 사람 이상해" 


아픔이 있었던 사람들, 해외에 낯선 이방인으로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그 증언은 그들에게 엄청난 위로와 확신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깜도 안 되는데, 너무 큰 것을 봐 버린 것입니다 감당이 안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일에 엄청나게 지쳐 버린 것입니다. 너무나 좋은 현상이죠. 


왜요?


믿음은 그 사람의 영적으로, 육적으로 완전한 고갈과 탈진 상태를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람에 대해서 이해가 깊지 못합니다.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제가 학부와 신대원 교회를 다니면서 점점 개인화 되어가는 것을 보는데요.

마지막 때입니다. 성도들조차 연약해 지고 있어요.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은 안타깝게도 상처입니다. 아픔이 공감을 낳습니다. 


그래서 슬픔 중에 있는 사역자들을 저는 귀하게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도

씨앗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훗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도 낙심을 하나 완전히 넘어지지 아니함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기다리세요. 정결 자체가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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