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은 백성, 교회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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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2월 선교지를 위해 기도
1 액츠출신 선교사, 개척한 교회에 벽화 요청(이전에 방문한 캄보디아 선교사가 아닙니다. 그분은 손절했습니다)
2 나고야 온누리교회
3 오키나와 전도여행
마음 주시는 분들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키나와 사역
총 4번을 도왔습니다. 두 번은 팀, 두 번은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제게 돌아온 것은 음란한 답변과
복귀한 신학교에서 깔아 놓은 덫입니다. 신학교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추악하고 사악한 일들
하나님의 편이라 믿었던 교수들, 손 놓고 불구경하며, "잘 해결되길".
서신서는 왜 자신의 고난을 숨기지 않고, 상황을 숨기지 않고, 적어 나갔을까?
어째서, 그의 삶을 성도가 알기를 원했을까? 한국의 정서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문화가 패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존중이라는 탈을 쓴보이지 않은 감옥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히하여 신학교에서 행해지는 '문화 인류학', 이 어리석음, 단지 복음의 능력을 믿지 못한 이성의 합리화의 변명.
세련됨을 추구하는 사람의 본질, 그러나 부흥은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이루어지니. 이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전도의 미련한 자로 복음을 전하시길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선교지나 도시에서나 한결같이 경험하는 것은, 우리에게 쓴 고난이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가 고난에서 회복되면 어김없이 본성이 회복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인이라 믿고
세상은 정직하고, 과학은 진실이라 믿는데, 성경은 사람에 대해서 말합니다.
"지독한 죄인", 큰 권능을 맛보고도 배신하고 하나님을 다른 형상으로 조각하는 수많은 일들
성경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가 아니면, 결단코, 끝내 천국에 갈 수 없는 배교의 존재.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찾아 왔는가?"
그들은 아직 이 세상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묶으시고 이리저리 방랑하게 하시며, 주신 말씀을 하나씩 이루실 때,
시간이 흘러서,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다시금 두들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명기 8:1-20
사람은 잊습니다. 감사함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온의 문 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의 구원입니다. 감사야 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차있었던 어려운 시절, 나는 거처가 없이 이동할 때,
의지하는 모든 것이 끊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따라 움직였습니다. 작은 소리로 옲조리며, 하나님께 구원을 바랬던 바로 그 시절.
오랜 시간이 흘러서, 눈에 보이는 것 중에 해결된 것이라고 해 봐야 원룸 뿐이지만, 이마저도 선교를 위해서 탈탈 털어 버린 덕분에 다시 보증금이 0원.
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런 네가 개척을 한다고?"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시편 18:16
구원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 수록 만나는 성도들에게, 사역자는 가공된 스토리가 아닌, 빌린 예화가 아닌
생생한 진리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금은 보화보다 더큰 축복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선포하시듯 외쳤던 그 말씀 "목회해! 목회가 100배 좋아" 그 다음 나를 기다리는 것은
정처없이 떠도는 험악한 일이었으나, 지금 나는 예수님이 너무 좋으므로, 100배가 아닌 그 이상으로 사랑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분입니다.
캄보디아 사역
첫 번째는 혼자, 두 번째는 팀으로, 그리고 계속된 요청으로 한 번 더 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긍휼한 마음에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사역자는 거짓말을 고하면 안 됩니다.
오키나와의 태만, 우에다에서 거짓된 설교, 내려와서 행실이 거짓되고, 게으르고,
팀을 해하는 말로 나를 괴롭게 하기에 나는 그 한 명을 내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들은 단에서나, 내려와서나, 일상에서나, 앞과 뒤가 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한 것입니다.
캄보디아 선교사
뭐라고 말할까요? 과거 러시아 선교사가 떠오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악의 뿌리가 됩니다.
생존을 위해 누구를 사고 판 것입니까?
내가 연민으로 사로잡혀 있을 때 나보다 어린 친구가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는 나의 연약함을 다시금 보여준 사건입니다.
사역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보이는 것을 의존합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누가복음 11:11
한 사람의 범죄는 공동체 전체를 타락시킨다.
아간의 범죄,
아나니아와 삽비라,
택한 자를 능멸한 시므이의 조롱,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 열왕기상 2:8
교회가 만들어진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상실된다.
거듭 말하나 선교지에서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엉엉 울어도 살펴보면 저보다 월등히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보다 부요한 까닭은 평안한 까닭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그래서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그것 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나는 베드로가 담대히 선포한 사도행전 3:6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니?"
전능자가 나를 또 택한 자를 눈동자처럼 바라 보시는데, 어려울 때마다 큰 권능으로 임하시는데, 내가 무엇이 부족합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게 하시며, 그가 원수의 목전에서 큰 상을 차려주시는 것을 수차례 경험한 저입니다.
그는 시종 나의 약함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시길 원하셨으며, 바라보는 자를 겸손케 하길 원하셨으며,
천국으로 인도 되기전 나의 비천한 삶을 아름답게 써 주시고 있기에 나는 여전히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주입니다.
나는 상세불명 천식이 있습니다. 한동안 더 심해졌으나, 경건훈련 팀 목사님의 조언으로 깨어났습니다.
홀로 말씀을 다시 읊조리고,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는 약을 먹고 있을까? 천식 스프레이를 쓸까? 설마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지라도 지금은 멀쩡합니다.
이 얼마나 민감한 몸인가? 기도하지 사탄의 불화살 받이가 되는 몸, 이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의 나라
"선교지에서 당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선교지를 갑니까?"
구원 받은 백성은 말입니다.
"내가 이방 나라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히라이다"
"내가 이방 나라 중에서" 늘 노래하는 구원의 찬송이 나의 가정에만 머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게서 부한 재정을 허락할지라도 외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 지갑이 멋진 자동차로만, 멋진 집으로만 행하며 자랑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썩어 없어질 것으로 인생을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높여져야 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 출애굽기 23:25
나는 총신대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방언을 받은 한 조직신학자의 서술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요즘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죄를 소외로, 십자가의 구원을 구제로 바라보는 악한 집단들이 있습니다.
결코 십자가의 구원은 구제와 동급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죄를 계수하고 있다는 점. 결단코 잊지 마시길.
다시 돌아와서,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이 되나, 열방에 선포된 그의 십자가의 대속 그리고 부활하심.
이 위대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저 어둠의 땅 조선에게 당도하여 충만히 이해 될 때까지 우리는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권능 그 권능 아래 우리는 천년의 왕국이라 일컫는 시대에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십자가 구원은 서랍의 낡은 이념같아서 도무지 그 완전하고 위대한 일들이,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는 은밀하게 오시지도 않으며, 두 번 오시지도 않고
십자가에서 단 번에 죄를 사하여 주신 것처럼, 단 번에 임하십니다.
교회는 주님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런 교회가 되게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부합니다. 자연과학이 하나님을 찬양할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세계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며,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숫자로 모독하는 것이
과학의 세계입니다. 피타코라스가 맹신한 종교입니다. 적법하게 쓸 능력이라고 해 봐야 우리 편리를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정확 무오합니다. 하나님이 6일동안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꿈땅의 소리 같습니까?
인간적으로 미안하지만 아니 솔직히 하찮아서 말도 꺼내고 싶지 않지만, 너희가 은하철도 999와 피카추를 굳건히 믿으나
성경은 일점일획되 변함이 없답니다. 사본학도 고고학도 인간의 무식함을 반영할 분입니다.
겸손하면 주께서 만나주시며
겸손하면 주께서 찾아 주십니다.
그것이 교회에서 구해야 할 하늘의 기도입니다. - 마7:7
흠, 그런데 우리 하영이와 수빈이가 이 찬양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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