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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온누리교회 아웃리치를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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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회 작성일 25-05-1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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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웃리치 팀은 2차가 한계점
선교팀은 많은 인원이 필요 없다.
사도행전은 소수로 일으킨 믿음의 행전으로
성령이 사람을 통해서 기록한 역사이다

사도행전 1:8 카카오 프로필에 달고
선교 비전이 있다고 주장한들 인재가 아니다
그냥 포지션이 없는 친구들이다.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유는 불어만 간다.
자기 교회 혹은 자기 신학 베이스가 있어서 하나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사역한 캄보디아, 그곳을 섬기는 선교사님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이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보고 

나는 이 연합의 한계를 뵜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지 않았던 탓이다.

"주어진 일은 내 일이라 여기며 기도하고 기도하면 행하게 된다" 

문제는 내 일이라 여기기엔 오늘날 청년들에게는 고통이 없다 

그냥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연민에 사로잡혀 있다.

1-1 온전한 팀의 구성
의외로 실수가 많고 후회를 많이 하는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하나가 되는 경우가 있다
완점함이 아니라 자신의 죄, 부족함에 대한 낙심이 도리어 공동체를 견실하게 한다.

1-2 선교는 특수 부대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인터콥처럼 컨셉 잡아서 "열방 열방" 하며 옆사람이 죽든 말든 선교하며 쓸어 담다간 망가진다. 

덕분에 땅 밟기란 말도 쓰기 어려워졌다. 백 투더 예루살렘도 쓰기 어려워졌다. 

선교의 끝이 이스라엘인데 이걸 쓰면 시작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장로교 기반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2. 교단신학 - 장로교의 한계
장로교는 결국 어거스틴까지 소급된다. 솔직하게 나는 어거스틴에 대해서 조금도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는 성벽이다. 이 대체신학을 전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성령 세례이다. 

문제는 신학이 견고해 지면, 체험을 부정하고, 그 역사에 목이 단단해진다. 견고한 진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길이 되고자 한다. 역사? 이게 무슨 프라이드가 되어야 하나?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아 100년이고 200년이고 한끗차이다.


3. 순교자들
"이것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구세대나 하는 옛 일이다." 사탄에 취한 지식은 그렇게 말을 한다. 

그렇지만 이성을 찾아 역사책을 펼쳐 봐라
도리어 많이 배울수록 비겁해지고 자신을 변호하며 위기에 도망간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서구든 동양이든지 한결같이 도망간다.

우리가 존경하는 신학자들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 혹은 "RUN"이었다.

고신, 그들은 자기 선배들로 인해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쪽팔리게 "내가 안 했어요", "너무 그러지 마요 한쪽으로 쏠리는 거 안 좋아요"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누가 이처럼 신앙을 가르치는가? 신앙에 목숨을 건 사람을 조롱하는가?
소래교회는 참배에 대한 사죄가 있다. 그렇다. 끝까지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개 들어서 "뭐 어쩌라고?" 인성을 포기하게 된다.
북한이 왜 저리 되었는지 기도하는 사람들은 안다.

4. 성령 중지론
성령이 아니고서 어떻게 예수를 믿는가?
스콜라철학인가? 내가 총신에 있는 것은 '낙도'란 키워드다. 지금은 목사님이시나 오래전 신학생이었던

전도사님의 낙도 개척, 그 모습이 자꾸 되색임되어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물론 여기는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게 맞다. 

약속하신 것 맞다. 2019년 지목하신 것은 이곳이다.
그러나 6월까지 상황을 지켜본 후 결정을 내리려 함 역시 내 계획에 있었다 지금 글로 토해 낸 것일 뿐.

5. MZ?
20대, 30대는 겸상하면 위험해진다.
권위 파괴, 이 독일 좌파 운동이 교회에 들어오고 나서
질서를 중시하는 교회에서 조차 위계가 파괴되었다.
이 문제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 정도로 큰 사람도 아니다. 나는 내 한계를 안다. 그러므로 "한계를 넘어서"란 뚱딴지같은 사람들을 닮고 싶지 않다.
조엘 오스틴인가? 아무튼

아신대 이후에 더 이런 형태의 사역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함을 내 마음에서 확인되었다.

사회 생활을 오래한 20대 전도사가 내게 말한 것처럼 그들은 스스로‘전도사’로 여기기에 이곳 총신에서는 

안 될 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박하지 않았다 내가 봐도 그렇다. 3학년은 아에 생각도 않하고 있다. 

여자고 남자고 스타성만 있고 감사가 없다. 어쩌다가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CCC나 선교 경험이 있던 친구들이었다. 

역시다. 그래도 기쁘다. 


6. 신학교 안 외제차
전도사들이 대형차나 외제차를 타다니? 정말 말세에 미친 일들이 눈에 보인다.
아신대에 대형차를 끌고 온 귀공자 전도사의 차를 보고 나는 순간 망치를 찾았으나 몸이 불편한 선배가 함께 있어 꾹꾹 참았다.
다른 한편, 대형차 사건 후,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일이다
구미상모교회 담임 목사님이 수요일 저녁 예배에 30분 설교하러 양평 아신대에 오신 일이 있었다.

순전히 딸 하영이 때문이다. 담임 목사님이 점심 채플도 아니고 사실상 학생 주관 집회에 온다? 

이 자체로 사랑이다.
하영이가 순수하게 목사님에게 와달라 부탁했고 목사님은 아무 생각하지 않으시고 딸의 부탁에 응한 것이다. 순수에 순수로 응답하다. 너무 아름답지 않나? 이것이 찐 자상함이다.
가시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소소한 그 모습에 감동이 올라 왔다.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7. 성도들의 돈은 교회에서 어떻게 쓰이는가?
내가 왜 선교 여행 준비 중 후원 받은 돈을 가볍게 여기는 행실, 혹은 은행 수수료로 나가는 것에 분노를 했었는가?
망할 놈들이 이 돈을 우습게 알았다. 이런 놈들은 사역하면 안 된다.

청년 전도사들이여?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8. 우에다 사역
총신대를 참여 시킬 계획을 완전히 접을 때
총신대 재학 중인 8년차 전도사의 조언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실상 마지막으로 시도해 본 것이다. 여러번 시도하지도 않았는데도

마지막이라는 것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3학년 여성 전도사가 우에다 사역에 도전을 했다.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니까 일본어를 잘하는 것 같았다.

물어 보니 일본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현 진 전도사와 수요일 날 학교에서 만난다.


아직 끊을 놓지 말라는 것 같다. 여전히 목마른 사람이 있다니?


이 과정에서 어떤 친구는 오락가락해서 거절했다. 선교에서 두 마음을 품으면 그를 사랑하여도 돌려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구멍이 된다. 설득해서 오거나 흔들려서 오면 자신을 주장하게 된다. 마음을 정하고 돌이킴이 없어야 선교지에서 섬길 수 있게 된다.

섬김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생각하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잘 할 수 있을까?" 이 고민도 깊숙히 내리면 자기애와 자기 보상이 숨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변론도 포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친구라 할지라도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어렵다는 말해도 "아하 그렇구나"하지 설득하지 않는다. 나는 혼자라도 한다. 때문에 집단에 대한 욕심이 없다. 

나는 사역을 키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흥을 보고 싶은 것이다.


9. 백석에 대해서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백석의 신앙고백은 여러 교단에서 조롱하는 거 알고 있다.
그래서 얻은 결론
“신앙은 보수적으로 신학은 자유롭게” 이 결과는 장신대 한신대가 잘 증명하고 있다.
그들의 시작은 분명 백석보다 한 수 두 수 위였다. 그렇지만 이내 그들은 이탈했다
선을 넘었다 한신대는 드래그 퀸이란 괴물을 낳았다. 총신도 깡총깡총 따라가고 있다.

기도실을 봐라 이미 기울어지고 있다.
축구장에 인원이 더 많다는 것은
지금 심각한 위기라는 증거가 된다.
새벽기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소수인지 아는가?

열매로 증명되고 있다.
긴장이 안 되는가? 저들이 사역하는 곳에서
"전도사님을 보니 저도 신학을 하고 싶습니다!" 라는 사람이 나오면 그는 찐이다. 

물론 정말 성품이 아름다운 몇 친구가 보이긴 하다.

다시 돌아가,
신학은 여타 학문과 다르게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 

그래서 규율의 억압이 아닌 질서 안에 자유로움이 있다. 참 신학은 사실상 자율적인 학문이 될 수 없다. 

복종이 된다. 어떤 “학”이란 의미는 선을 넘어사라도 알고자 하는 그러니까 아직 모른다는 전제가 깔린다.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신학은 경건훈련을 중심으로 목회 선교사를 양성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성경을 배우는 것이다 

성경을 배우려면 기도가 필수다 보라 자유주의도 성경 많이 읽는다
심지어 유대인도 성경을 읽는다

기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성경이다. 


중요! 공부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신학에서 히브리어 헬라어의 연구는 필수이나 교리로 묶어서 시대를 타면 그게 학문이 되면, 

성경 해석에 대해서 쓸데없이 성경을 어렵게 한다.

신학자가 혹은 목회자가 그것을 사유화 하여 권력화한다. 성도들은 성경을 더 멀리한다. 봐도 목사가 아니라면 끝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약해지고 세속적이게 된다. 교회는 테마파크가 된다.

결정적으로 성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교단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합동인지 통합인지 기장인지 모른다. 

성도들은 모른다.

하지만 얘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은
성도를 넘어서 호흡이 있는 대한민국인이라면 모두가 안다. 그것을 받느냐 거부하느냐 그 결단은
첫 번째 목사에 달려 있다. 그들이 말씀이 육신 되는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계속 살아내지 않으면 누굴 통해서 예수를 아는가?

그냥 서비스 직이다. 코로나로 몸 사리고, 온라인 예배를 만든 그런 교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일반인은 그 목사가 십자가를 지는가? 그 성품에 "나도 한 번" 성전에 발을 내딛게 된다.
완악함이 아니라 이미 마음이 개방된 것이다. 우린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럼에도 착각하지 말 것은 믿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몫이다.

고난 중에 혹은 고문 중에 흔들리지 안 았던 그들의 믿음이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학문보다 돈보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받아들이게 되면 하늘을 바라 보게 된다. 


10. 내가 사랑하는 온누리교회, 5월까지
"신학의 스펙트럼이 있어요" 이런 헛소리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싶다. 심판대 앞에서 그 말이 통하나 봐라. 정말 한심하다.

마침, 그날 권사님 한 명이 내게 전화를 해서 또 쓸데 없는 말을 꺼내서 걸러내기로 했다.
자기 교회가 왜 망가지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곳 성도들처럼 뒷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과거에 내게 데이비드 차를 추천해서 내가 부정했고 왜 그러한지 늘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이 패턴이 얼마나 반복되었는가? 

이 속이 빈 명성에 사로잡힌 사람아!

다시 강조하나 성경은 일점일획도 건들면 안 된다. 가감하면 당신은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거기서 스펙트럼이라고 무슨 변론을 한들 지옥에 갈 것은 정해진 것이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착하게 살면 성실하게 살면 구원을 받더냐? 
아무쪼록 잘가라. 그렇게 나를 보고 단에서 본인 스스로 기도한 일들을 잊었는가?

로잔같은 걸 해서 더 성숙해졌나? 유학하면 더 성숙해 지나?

잘가라


마지막 나의 소망까지 굿바이가 되었다.
구원은 좁은 길이라는 잊을 때마다 걸 당신들이 증명해 준다

마무리
나는 천식이 있다. 신학교에서 기숙사 의무는 필요하다.

겨울이 오면 히터, 그 때문에 시작된 기침으로 기숙사 생활이 곤란해질 것이다. 나도 잠을 못자 멍하다. 

방를 같이 쓰는 사람이 때론 신경질 혹은 불편함을 호소하여 난감했지만, 사생회해서 따뜻하게 도움을 주었다. 

비빌 때까지 해 보겠으나 큰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얼마전 합신대 석좌 교수님이 와서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고

저걸 두 시간이나 앉아서 듣고 소감문을 써야 하는 일에 실소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물로 보는 것인가?

구원을 저리 어렵게.. 하다니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예수님도 그가 하는 말을 알아 듣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신학을 카르텔화 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미쳤다.

성령중지론자들.
내가 아니면 그도 아니여야 하나?
심지어 진화론자 최재천 학자도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겸손이 이방인에게서 발견됨은 어쩜이냐?
때문에 우에다 후 서울 근방인 백석 후기 지원을 생각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나는 시간을 합리적이게 쓰고 싶어 한다. 

나에게 합리적이란 성경을 읽는 시간, 기도의 시간 그리고 독서의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

그래도 일본 사역을 가댜하고 있다 몇의 씨앗만
발견돤다면 방향은 고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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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정보

교회명 : 히스아크미션처치 / 담임 전도사 :하테바모세
주소 : REPUBLIC OF KOREA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화 : 010-2054-1914 팩스 : 02-123-4568
교회헌금 : 우리은행 1005-403-431271 하테바모세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히스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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