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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영성이 있을 시절에는 기도의 편지을 받으면,
받은 사람이 기도한다. 그리고 헌금을 가부를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의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기도편지를 작성한 그가 누구인지,
혹은 기도편지를 소개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기도편지를 쓴 사람이 지닌 학위와 스토리가 필요했다.
물론 돈을 쥔 사람이 그 편지를 보고 자기 마음과 합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시겠지"가 된다. 혹은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가 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다.
교회에서도 자신에게 유익을 줘야 헌금을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문득 이름에 대해서
아시아는 관계 사회다. 한국은 학력이 중요하다. 기성세대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왜 자녀를 그 비싼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가?
다 이유가 있다.
학벌이 없으면 얼굴이라도 반반해야 한다.
얼굴이 좋으면 취업율도 높다.
한국 사회는 얼굴이 탁월하면 고졸이라도 상관없다. 특히 여자는 그렇다.
여자는 돈 벌기로 결정하면 평균의 남자보다 많이 벌 수 있다.
애플사의 CEO 스티브잡스
한때 스티브잡스의 PT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학연으로 관계되어 있다.
펀딩도 결국 관계다. 또한 리더의 학벌이 받쳐주지 않으면 팀의 규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이름을 가지면 흥행이 보장된다. 돈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그 이름을 널리 파는 게 회사다.
교회는 누구를 전하는가?
창세기 11장, 바벨탑의 이름을 오늘날로 번역하면 명성이다.
청빙, 교단신학 안에서
국내 이름 있는,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그것도 서울권 청빙에서 국산 학벌이 될 것이라 여기면 곤란하다.
왜들 유학을 가는지?
"학벌 중요하지 않다" 이것보다 꿀발린 거짓말도 있을까 싶다.
그럼 이력서는 필요없지 아닌가?
고졸 천재와 하버드 졸 누굴 채용할까?
천재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면접자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실력을 알아 보는 법이다.
신학 그 카르텔
"구원을 그따위로 어렵게 가르치는 석학", 칼 라너인가?
이 진리를 알기 위해서 유학이 필요한가?
멀리 저 멀리 스리랑카인이 자국에서 성경대로 귀신을 쫓고 병든자를 치유한다. 이단인가?
이성주의자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므로 이단이 된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이성으로 쌓은 그들의 견고한 진이 위협을 받게 된다.
물론 한국의 배추머리 유튜버가 퇴마사로 명성을 얻고 있다. 집사님들은 왜 이런 영상을 내게 보여주나?
신학박사
박사가 되려는 자는 논문을 점검 받아야 한다.
새로운, 신선한 것이 유리.
결정적으로 학위자의 글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권세자의 인용글이 필요하다
이 세계에서 설득의 힘은 믿음이 아니라 명성이다.
십자가와 죄 사함, 누가 모르냐?
친구들아 국내파를 무시하는 교수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까?
유학파가 대형교회 청빙 조건이 된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사역하다가 국내로 넘어오는 일은 신분상승,
삶의 질도 달라진다. 그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목숨 걸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일종의 쇼다.
그는 선교사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에겐 믿음보다 벨하우젠의 문서설이 있기에 인생 도박 걸 수 없다.
국산 추천서 취업
중형 교회에서는 대형교회 담임목사님에게 청빙 부탁이 오곤한다. 그의 추천서면 직방
신대원
학생 한 명당 1년에 최소 350 -700만 원은 보장된다.
독립교단에서 안수를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선교사들이다. 선교사가 될 것이면 독립교단도 좋다.
혹은 교단 헌법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정치를 하려는 유학파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가장 좋은 그림
또래들과 같이 학부를 졸업하고 교단 신학을 간다.
24세 대학 졸, 25세 신대원 입학. 훗 날 그 나이 때 친구들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대형교회 출신, 교단신학
선교사도 대형교회 출신이면 4륜구동 자동차가 생긴다.
임래청 선교사님 아직도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 저기 기도편지를 보낼 창구가 있나?
학교는 네트워크의 장이다.
지금 그분의 후원처라면, 대학원 때 한끼 아껴서 모은 돈으로 외국인을 도왔다는 건 아신대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본인께서도 가난하시다.
놀랍게도 그 후원 받은 외국인, 이제는 그가 잘 되어서 임래청 선교사님을 돕는다. 이는 권오윤 교수님의 증언이다.
지금은 마지막 때
코로나로 문닫았던 대형교회 그들로 인하여 모든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
용서 받기 어렵다.
용서 받기 어렵다.
그런데 신학의 스펙트럼이라고?
이것은 나를 죽여 주세요라는 의미인데?
지혜
성도는 니가 무슨 대학을 어디서 나왔든지 상관 없고 니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만 본다.
다시 말한다. 좁은 문이다.
만약 어떤 교회에서 자신의 백그라운드가 없어도
써 준다면 열심을 다해라. 그 교회는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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